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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랑기자포
: 보물 제861호
불랑기자포는 불씨를 손으로 점화·발사시키는 화기로는 조선시대
유일한 후장식 화포이다. 불랑기는 15세기 포루투칼을 포함한 서구
제국에서 만들어져 1517년경 중국 광동지역에 서역상선이 들어오면
서 전해졌다. 우리나라에는 조선 선조 25년(1592)에 명나라 군대가
가지고 들어왔다고 알려졌으나 이 유물이 발견되어 명종 때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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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불랑기자포는 발사틀 구실을 하
는 모포와 실탄을 장전하여 모포에 삽입·발사하는 자포로 나누어진
다. 전체적으로 몸통이 길고 포구쪽이 가는 형태이며, 몸통 윗부분
에는 가늠쇠가 있고 포구 위쪽에 가늠자가 달려있다. 원래 바퀴는
없었으나 고종 5년(1868) 신헌에 의해 4바퀴가 달린 마반차를 개발·사용하였다. 임진왜란
때 평양성 탈환에 널리 활용되었으며 신미양요(1871) 때는 미국의 군함에 맞서기 위해 초지
진과 황성보진에 배치되기도 하였다. 오랜 동안 지하에 묻혀 있었지만 완전한 형태로 발견되어,
우리나라 화포사 연구는 물론 국방과학기술문화재로써 중요하게 평가된다.
조흡도총제부동지총제왕지
: 보물 제1226호
문서는 태종 6년(1406) 윤 7월 13일 국왕이 무신인 조흡(?∼
1429))을 가선대부 좌군도총제부동지총제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사
령왕지이다. 조흡은 고려 후기 문하시중을 지내고 창성부원군에 봉
해진 조민수의 손자로, 정종 2년(1400) 방간의 난에서 공로를 세워
태종 1년(1401)에 공전을 사급받는 한편 무관의 요직에 발탁되어
그 벼슬이 재상의 반열에 올랐다. 이 문서는 총 7행에 걸쳐 초서체로
세로로 썼으며, 연월 위에는 ‘조선국왕지인’이란 새보(임금의 도장)가
찍혀있다. 왕지는 세종 말기부터 교지로 바뀌고 여기에 찍히는 직인도 ‘조선국왕지인에서 ‘시
명지보’로 바뀌었다. 이 문서는 조선 전기의 문서양식, 새보사용의 변천과정 연구 및 인사행
정제도 연구의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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