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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노원구 연혁 및 지역
1.. 연
연 혁
1) 근세이전의 노원지역
1)) 삼
삼 국
국 시
시 대
삼국시대 초기 노원지역은 백제의 영토에 속하
였다
. 그러나 장수왕이 도읍을 평양으로 옮기고 남정( 南
征)을 감행하여 위례성을 함락시키면서 고구려의 통치하에 들어갔다. 이때 고구려는 군현제에 따라 현재의
도봉구, 양주군 일대의 새로운 점령지에 매성군(일명昌化)을 설치하였다.
그 후 551년 신라백제의 연합군에 의해 고구려가 한강유역으로부터 후퇴하게 되면서 이 지역은 다시
백제에 귀속되었다. 그러나 다음 해 신라 진흥왕이 한강유역을 점령함으로써 신라백제의 공수동맹이 파
기 되었고 군단을 주둔시켜 관할하니 이 지역은 신라의 통치하에 들어갔다. 이어 757년(경덕왕 16년)에 현
도봉구 지역을 포함한 양주군 일대에 래소군을 설치하였다.
지리적으로 노원지역은 공릉동~상계동에 이르는 서울의 동북쪽 일대로 삼각산을 뒤로하고 한강을 중심
으로 원야지대를 앞에 두고 있어 고대 도읍지로 정할 만한 조건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백제초기 도
읍지 하북위례성을 이곳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또한 이러한 지리적 여건으로 노원지역은 삼국이 한강유역
을 차지하기 위한 교두보로써 고구려 입장에서는 남하를 위한, 신라와 백제의 입장에서는 북진을 위한 중
요한 지역이었다.
2)) 고
고 려
려 시
시 대
고려시대에도 노원지역은 대일대송 무역경로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고려 태조는 래소군을 견주라
개칭하고 신라때의 한양군을 양주라 고쳐 이 양주에 지주사를 두어 견주(見州)를 관할케 하였다. 나아가 현
종9년(1018)에는 견주를 양주에 편입하였다.
3)) 조
조 선
선 시
시 대
조선시대에 접어들어 지방행정제도가 개혁되면서 태조3년(1394)에 도읍을 한양으로 천도하게 되니 한
양부는 한성부로 개칭되었다. 이 한성부는 양주로써 양주고을 범위 안에서 도읍을 정하고 그 지역만을 한성
부라 하였고 현 도봉구 지역을 포함한 기타 양주의 관할구역이었던 지역은 그대로 양주에 속하였다.
한성부의 설치에 따라 양주 부치(府治)는 양진(광진) 서쪽 아차산 남쪽인 대동리로 이전 하였으며 지양
주지사로 승격되고 1395년에 다시 부(府)로 승격되었다. 태조6년 부치(府治)는 다시 견주고기(見州古基)
인 주내면 고읍리로 이전되었다.
태종10년에 양주는 목(牧)으로 되었다가 같은 해 13년 다시 도호부(都頀府)가 되었다. 그후 세종12년 다
시 양주목이 되는 동시에 진(鎭)을 두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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